본문 바로가기

詩心에젖어

겨울나무에 관한 시 모음

겨울나무로 서서 / 이재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다.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잠시 안녕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위해
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
살다보면 삶이란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분분한 낙엽,
철을 앞세워 오는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 오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기 위해
잎들아, 사랑의 이름으로
지난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군다

 

 

겨울나무 / 신경희 

 

아름답구나

허물을 벗어 던진 너의 자태

낱낱이 들어난

상처투성이와 비틀림

 

거친 피부에

버석거리는 살결

굵은 허리로 꼬여있어도

너의 자태가 아름답구나

 

뼈마디가 앙상하면 어떠하고

우유 빛에 하얀 속살이 아니면 어떠하랴

 

너는,

언제나 땅을 지키는 나무이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자연인 것을

 

아름답구나..

알알이 비춰지는 울퉁불퉁 너의 굳은살

낱낱이 해부되는 너의 곡선

누드로 서 있는

네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겨울나무 / 김덕성

 

아침 창밖에

헐벗은 채 밤샘을 한 겨울나무 

안쓰럽게 보인다

 

이상 기온이라 따스하다지만

그래도 찬바람

맨살을 헤집고 스쳐 가는데

 

언젠가 다칠 칼바람

노출된 채 보란 듯이 서 있으니

어쩌면 좋아

 

간밤에 가지에 내려앉은 달빛

얄밉게 속삭이던 서리

더 시리게 하고

 

차라리 흰 눈이라도 펑펑 내려

따뜻하게 덮어 주렴

봄에 원대한 꿈을 이루게

 

 

겨울 나무 / 강현호

아무리 추운 날도
빈 나뭇가지마다
바람들이 몰려와 논다

동네 아이들처럼 재잘대며
앙상한 나무의 팔뚝에도 매달려
신나게 그네를 뛰는 겨울 바람

그래서
겨울 나무는 심심하지 않다.


겨울나무의 꿈 / 윤보영

 

눈을 밟고 선

저 겨울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살면서

그리워 가슴 저미는

나 처럼

꽃피는 봄을 미리

꿈꾸고 있는지 몰라

 

봄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겨울나무 / 이재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더욱 단단한 겨울나무

 

그해 겨울나무 / 박노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도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절대적이던 것은 무너져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 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굵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뿌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촉촉한 빛을 스스로 맹글며 키우고 있었다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에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겨울나무 / 김영래

 

겨울나무

매마른 가지마다

겨울바람 불어와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그져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서

수백년을 지켜보며

당 당 하게 서있다

 

흐르는 세월속에

오늘도

푸른 새싹을 꿈꾸며

봄을기다린다

 

마을입구에

묵묵히 서있는

져 나무는

 

이제 잎이 무성 해질

여름이 오면 그늘믿으로

동네 사람 들이 모여들어

한가로이 덕담을 나누리라

 

 

겨울나무의 독백 / 정연복

 

떨칠 것 모두 떨치고

텅 빈 몸으로 우뚝 서리

 

긴긴 추운 겨울이

혹독한 시련이라 할지라도

 

불평하지 않으리

끝내 쓰러지지 않으리

 

매서운 칼바람도 폭설도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 안으리.

 

희망이 있는 고통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는 것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생명은 더욱 깊고 견고해지는 것

 

연초록 새순이 돋는 그 날을 위해

희망의 불꽃을 피우리.

 

 

겨울나무 / 오보영

 

나 비록

지금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볼품 없을지라도

내겐

희망이 있단다

파릇한 새싹

싱싱한 잎으로 단장을 해서

기다리는 님께 기쁨을 주고

풍성한 맘  안겨다줄

꿈이 있단다

 

 

미루나무의 겨울나기 / 김한백

 

곁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나는 것

저 나무를 못난 생이라 누군가 말한다

그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질긴 생명력을 거친 손에 움켜쥐고 추위를 견딘다

뼈를 드러내며 죽은 것같이 위장하지만

잎이 떠난 자리를 하소연하듯 별을 매달고 있다

허전한 마음이 새끼 잃은 아비 고라니 눈빛인

저 미루나무

속이 영 비어 있는 것 같아도

밤알같이 응집한 채 희망 틔우고 햇살 모아 군불 피운다

여름의 아린 기억이 거름이 되었고

장대비가 회초리가 되었고

회오리바람이 죽비가 된 미루나무의 늦가을

기저에 꽉 들어차

아파도 보통 아픈 것이 아닐 법한데,

수액이 얼기 전

한 톨의 수혈마저 다 내어주고도 꼿꼿한 저 나무 곁에서

늙은 아비가

눈 내린 옷 털어내고 문장 밖으로 걸어 나온다

소복이 쌓일 고봉밥을 덜어 줄 생각으로

미소 짓는 저 나무 곁가지

거듭나는 겨울 오기도 전에 벌써 반짝거리며

우주를 횡단하고 있다

 

 

겨울나무 속 꽃 / 정연복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봄이 되어

비로소 꽃 피는 게 아니라

 

겨울나무 속에

꽃은 이미 들어 있다

 

겨울 너머 오는 봄은

겨울과 맞닿아 있고

 

겨울 지나 피는 꽃은

겨울나무와 연이어 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목(裸木)의 온몸에는

수액이 돌아

 

봄의 연둣빛 이파리를

잉태하고 있을 터.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스물 안팎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 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서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이유 / 윤보영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가지 끝에 남긴

까치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 안이 따뜻한 것은

날마다 담겨 사는

그대 생각 때문이었군요.

 

행복합니다

 

 

겨울나무 / 류인순

 

지난가을

벗어 던진 옷가지에

시린 발목을 덮고

나무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네

 

겨울 한복판

날을 세운 칼바람에

온몸 맡긴 채

골짜기 사이로

묵은 추억 밀어내고

 

하분하분 춤사위

눈꽃 핀 가지마다

연둣빛 설렘

움 틔우기 위해

옹골차게 숨 고르네.

 

 

겨울나무 / 심억수

 

새 날을 채워가는 겨울나무

빈가지에 바람만 가득 걸렸다.

가슴에 안았던 소망, 앗아간 바람

기다림으로 걸어 두고

여백의 미를 안으로 다스린다.

버림으로써 초연해지는 너

땅속의 별이 되고 싶은 인생

당당한 알몸이 되기 위해

난 무엇을 떨처야 한단 말인가

채워서 비워지는 게 아니라.

비워지는 걸 다시 채우려는

나의 욕심을 거두고 나면

내 생의 뒤안길에 시간만 둘 수 있을까

모두를 버리고서야 모든 걸 얻은 듯

마냥 자유로운 너.

 


겨울나무 / 정연복

 

매서운 한파 몰아쳐

세상이 꽁꽁 얼어붙고

 

거리의 사람들

종종걸음을 치는데도

 

빈 가지들뿐인

알몸의 겨울나무들

 

참 의연한 모습이다

꿈쩍없이 곧게 서 있다.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까지는

 

어차피 견뎌야 할

혹독한 시련이라면

 

끝내 견디리라

끝끝내 참아내고 말겠다는

 

비장한 결의 하나로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나무들.


겨울나무 /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있는
흠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버릴 때
마음도 떼어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겨울나무에게 / 권달웅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귀를 자르겠다.
사나운 바람을
듣지 못하도록,
눈이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혀를 자르겠다.
모진 추위를
말하지 못하도록,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차단하겠다.
고통받고 살아가는
들어도 침묵하고 살아가는
추운 세상을
네가 알지 못하도록,  

 

겨울나무 / 복효근

 

꽃눈은 꽃의 자세로

잎눈은 잎의 자세로

손을 모으고

칼바람 추위 속에

온전히 저를 들이밀고 서 있네.

 

나무는

잠들면 안 된다고

눈감으면 죽는다고

바람이 들려주는

회초리를 맞으며

낮게 읊조리네.

 

두타의 수도승이었을까

얼음 맺힌 눈마다 별을 담고서

나무는 높고 또 맑게

더 서늘하게 눈뜨고 있네.

 

#두타(頭陀)-산야를 떠돌면서 빌어먹고 노숙하며

온갖 쓰라림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불도를 닦음,

또는 그런 수행을 하는 중을 뜻한다.

 

 

'詩心에젖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짧은 시 모음 ]  (0) 2023.12.17
[ 겨울과 눈에 관한 시모음 ]  (0) 2023.12.17
첫눈에 관한 시 모음  (0) 2023.11.27
시들지 않는 그리움/김원태  (0) 2023.11.25
늦가을에 관한 詩 모음  (0) 202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