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시 모음 ]
1, 반달 / 정호승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2. 그리움 / 신달자
내 몸에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 대로
휘몰아 너에게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 이동
3. 귀뜸 / 안도현
길가에 핀 꽃을 꺽지마라
꽃을 꺾었거든 손에서 버리지 마라
누가 꽃을 버렸다 해도 손가락질하지 마라
4. 사랑 / 김명수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5. 눈물 / 정희성
초식동물 같이 착한 눈을 가진
아침 풀섶 이슬 같은 그녀
눈가에 언뜻 비친
6. 비가 온다 / 김민호
비가 온다
이쯤에서 너도 왔으면 좋겠다
보고싶다
7.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를
8. 시집 '시밤'중 / 하상욱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9. 알아! / 원태연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10. 낙엽 / 유치환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11. 땅 / 서윤덕
모든 것을 품고도
모든 것 아래에 있는
가장 겸손한 그대
12. 부탁 / 나태주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13. 後記 /천양희
시는 내 自作나무
네가 내 全集이다.
그러니 시여,제발 날 좀 덮어다오
14. 마른 나뭇잎 /정현종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15. 시멘트 /유용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 까지 철저하게
부서져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16.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 까지
17. 그리고 삶 / 이상희
입술을 깨물어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재채기 삼창
18. 꽃 /조은
오래 울어본 사람은
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
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
19. 호수 -정지용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20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그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21.조용한 아침 / 이시연
말없이
꾸역꾸역 밥을 먹습니다
남편은 직장에서 할 일을
딸은 다가올 시험을
나는 며칠 동안 찾지 못한 물건을
모두가
골똘히
생각만 먹습니다
22. 환절기 / 서덕준
네게는 찰나였을 뿐인데
나는 여생을 연신 콜록대며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23. 택시 / 박지웅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
24. 지평선 /쟈콥
그 소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모두였다.
25. 지렁이 / 이외수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26. 사는 법 / 나태주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27 풀 꽃 3 / 나태주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피워 봐
참 좋아
28.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9. 봄, 파르티잔 / 서정춘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30. 당신 /최대호
당신이 자주 힘들어한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라거나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은 남보다
위로가 한 마디 더 필요한 사람일 뿐
31. 마음 / 이석원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 떨어져 피어나는 것
누군가 물을 주면
이윽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그렇게 뿌리내려 가는 것
32. 들 / 천양희
올라갈 길도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33. 겨울산 /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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