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편지 / 홍수희
어딘가 허술하고
어딘가 늘 모자랍니다
하루나 이틀
꽉 채워지지 않은
날수만 가지고도
2월은 초라합니다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 틈새로 가까스로
걸려 있는 날들이여,
꽃빛 찬란한 봄이
그리로 오시는 줄을
알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1년 중에
가장 초라한 2월을
당신이 밟고 오신다니요
어쩌면 나를
가득 채우기에
급급했던 날들입니다
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더라도
조금은 부족한 듯 보이더라도
사랑의 싹이 돋아날
여분의 땅을 내 가슴에
남겨두어야 하겠습니다
2월의 마음 / 김인숙
서둘러 나온 새싹 하나
아직은 낯설고 차가운 눈꽃 속에
오들오들 잠이 들었네.
지나가던 2월 멈칫 시선 머물러
햇살 끌어당겨 토닥토닥
시린 발등 덮어준다.
이 따스한 느낌 눈꽃이 먼저 알고
눈물 주르륵 떨구는 날
그 사랑 빨리 전하고 싶어
햇볕이 부지런히 얼은 땅을 깨운다.
2월 / 목필균
바람이 분다.
나직하게 들리는
휘바람 소리
굳어진 관절을 일으킨다.
얼음새꽃
매화
산수유
눈 비비는 소리
톡톡
혈관을 뚫는
뿌리의 안간힘이
내게로 온다
실핏줄이 옮겨온
봄기운으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햇살이 분주하다.
2월의 노래 / 정연복
새해 첫날을 맞은 게
엊그제 일만 같은데
눈 깜빡할 새
한달이 지나갔다.
어느새 추운 겨울
푹 익어 버렸으니
꽃 피는 봄날도
이제 그리 멀지 않으리
겨울과 새봄을 살며시
이어주는 징검다리
2월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리.
오늘도 바람 불고 / 도종환
어제 불던 바람이 오늘도 붑니다.
견딜 수 없이 씨리꽃 한 무더기 바람에
넘어집니다.
어제 피었던 꽃들이 오늘 시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습니까
고요한 뼈 하나로 있습니까
나는 아직 살아서 봄풀 사이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습니다.
빛나던 것들도 하나씩 재가 되어서 떨어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걸 알면서
오늘도 지향 없는 길을 많이 걸었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어디쯤 와 있습니까
오늘도 바람 불고
싸리꽃 한 무더기 바람에 넘어집니다.
2월의 시 /홍수희
아직은
겨울도 봄도 아니다.
상실의 흔적만
가슴께에서 수시로 욱신거린다.
잃어버린 사랑이여
아직도 아파야 할
그 무엇도 남아있다면
나로 하여 더 울게 하고
무너진 희망이여
아직도 버려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쓴 잔을 비우게 하라.
내 영혼에
봄빛이 짙어지는 날
그것은
모두 이 다음이다.
매화 / 문희숙
꽃피는 봄이 오면 포근한
남풍 두 볼 보듬고
섬진강가 매화꽃이 피어나겠지.
샘솟듯 설레는 마음은
어머니 계신 고향집으로
오늘밤에도 꿈에 날개를 편다.
추억을 곱게 담아 둔
빛바랜 앨범 속에
머무는 단발머리 친구 숙이 보고 싶다.
위를 보니 따스한 봄볕이
겨우내 움추린 몸 감싸주고
코끝엔 풀 향기 맴 돌아 나른다.
기다리는 봄날 / 이병주
한걸음으로 달려가서
와락 안고픈 봄날
겨울이 길어서
내가 성급했나요
양지 바른곳 못 찾고
움츠리고 있을 봄날의 꿈
오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볼까요
개울물 졸졸졸 봄을 부르고
겨울 철새 끼룩끼룩
이별을 노래하는데
보내야 할 겨울날은
아직도 남아 있나요
나무에 동여맨 짚 섶
겨우내 궂은 생명 불러 모아
따스한 햇볕 드는 날 휠훨 태워가며
기다려 봅니다.
봄날의 꿈
봄아, 빨리 일어나 / 정용철
봄에는 바람이 붑니다.
오후가 되면 바람이 나와
나무를 흔듭니다.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나무들을 깨우기 위해서 입니다.
"나무야! 빨리 일어나.
얼른 꽃을 피우고 잎을 내야지!"
좋은 변화는 늘 두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는 현실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고
하나는 하루하루를 꽃 피우면서
열매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 2월 / 나상국
끈적끈적 찰거머리처럼 온몸에 엉겨 붙은 세월
몸조차 가늘 수 없이 숨이 턱턱 막혀오던 햇살 비치
무더운 여름날 한 평 땅도 되지 않는 나무그늘에 기대어
달빛 스치는 창가에 헉 ~헉 긴 혀 매달아 놓고
먼 고향을 그리듯 마음속으로 그려본 세한도
발목의 깊이로 쌓이던 눈
턱밑 높이까지 빠져 허우적 되는 긴 겨울의 늪
소한 대한을 밀어내며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 질 쳐
아지랑이 피어오를 봄 마중 가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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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 박얼서
하늘 아래 첫 동네
산기슭 구석진
응달에 웅크린 잔설
아직 살아
거친 숨 몰아쉬는데
남은 겨울
어떡하라고
당신 홀로 서둘러
길 떠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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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 임명자
햇살이 바람과 정간한 모반을 감행한다
겨울을 벗겨내는 혁명
세 살배기 웃음 같은 햇살
피 흘리지 않고도 변해지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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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 조양상
한시라도 바삐
겨울을 데리고
먼 길 떠나고 싶어 했던 너는
가난한 식속들을 위해
위안부로 팔려간
우리 이모의 헤진 옷고름이다.
하루라도 빨리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이름마저도 잊어지길 원했던 너는
홍역을 겪어야 만이
쑥쑥 자랄 여린 영혼을 위해
까까머리 이마 위에 얹어진
내 첫사랑의 젖은 손수건이다.
그런 너의 슬픔을 대신하여
저수지 얼음도 쩌렁쩌렁 울어주고
설움에 불어 터진 버들강아지도
노란 개나리로 피어난다.
밤을 새워
여린 생명 피어나길
두 손 모아 빌어준 너는
침묵으로 겨울잠 깨우고는 요절한
계절의 어미니,
빈 쌀독 긁어모아
이침을 차려내신
울 어머니의 정화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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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 조용미
상한 마음의 한 모서리를
뚝뚝 적시며
정오에 내리는 비
겨울 등산로에 찍혀 있던 발자국들이
발을 떼지 못하고
무거워진다
응고된 수혈액이 스며드는
차가운 땅
있는 피를 다 쏟은 후에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나
비의 피뢰침이 내려꽂히는
지상의 한 귀퉁이에
바윗덩어리가 무너져내린다
겨울산을 붉게 적시고 나서
서서히 내게로 오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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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 허순위
쓸쓸한 겨울 저녁거리에
2월이 깔리고 있었다.
그 가장자리 부근에서 사라진 몇 날은
우리 은하 바깥 우물 안에 있고
언제나 출렁거리는 불안의 바다였다.
고양이 한 마리 숨은 꽃 사이를
갸웃거리면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듣고 있었다.
차 한 잔 하실까요?
누군가 붙잡았다 허공에서 슬쩍
손을 뺀 찻잔 같은
달이 공중에 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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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비 / 오보영
아직은
다
녹아내리기가 싫은데
아직은
다
내어줄 수가 없는데
아직은
맘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그래도
젖어드는 너를 대하니
곧 다가올
님 생각에
내 맘 많이 설레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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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생 / 이향아
정월은 한 달 내내
경축의 놋쇠 징만 두드리다 가고
사향노루 눈짓하는 3월을 내다보며
옥당목 하얀 바람 기폭처럼 퍼지는
지금은 꿈인가 아릿한 2월
자수정 반짝이는 어름짱 밑으로
뼛속까지 비치는 빙어 떼가 흐르고
입춘 우수 안개는 저음으로 깔려
아슴아슴 지는 날짜 스무 여드레뿐인,
숨 쉬기도 아까워라
짧은 2월에
2월 그날에 나는 처음 울었다
월계수 머리 띠 자랑처럼 두르고
순한 햇살 내 이마에 영광을 적어
천지는 오로지 그리움뿐이더라
2월 그날 나는 처음 눈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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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은 / 민경대
우리는 모든 시간을 죽인다
2월은 바람을 먹는다
강가에 버들잎을
노을 지는 순간을 본다
참으로 어두운 시간이다
다시 손을 씻고
구름 덮인 산을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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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 민경대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삼키지 말고
하루를 거름 가마에 넣지 말고
어두운 골목을 빗자루 들고
바람이 쓸어주는
언덕에 나 홀로 있고
아무도 오지 않는
길 목 바람만이 나의 손목 잡고
그림만은 덩달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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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설야 / 고은영
창 넘어 하이얀 눈송이들이
시린 얼굴로 밤을 부르고 있다
어김없이 올해도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밤새 온 세상을 덮었다
봄의 화려한 유혹에도
나의 냉골엔 아픔만 서성대고
군불조차 지필 수 없는 얼룩진 가슴으로
희미한 그리움이 마지막 기차처럼
저 눈길을 헤치며 어디론가 달리고 있다
은둔했던 가난한 날들의 시름겨운 눈동자가
어두운 창가로부터 추억의 토막들을 실어 나르며
발기된 성기처럼 투영됐다 사라져 간다
아, 나는 이 더러운 질병의 범주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어느 겨울의 골목 아직도 밤길을 헤매이며
내리는 눈에 고립된 채 까부라지고 있나
정적에 사로잡힌 침묵의 새벽
희뿌옇게 밝아오는 창가를 응시한다
이제야 말로 나는 희망을 노래 불러야 한다
그런데 유리창은 왜 저렇게
지저분해져만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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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안개 / 고은영
저 숲은 개갈 난 가슴으로 장승처럼 거기에 서서
뱅뱅 감아오는 축축한 안개를 받아들였다
몇 개의 햇살이 반짝이다 꺾여 갔다
어떤 나무는 헐벗은 제 몸 위에 부끄러운 도표처럼
몇 개의 마른 잎사귀들을 후줄근하게 매달고 서있다
침묵 위에 침묵이 더 두껍게 맴돌고
휘적휘적 걸어가 들춘 1204호 우편함에 광고 용지들
그리고 순복음교회 일회용 휴지가 얌전하게 놓여 있다
나의 절정은 언제였나
2월의 전령들이 봄을 부르는 소리가 저 안개 숲에서 조곤조곤 들렸다
식은땀으로 번져가는 추상화에 쨍하게 화인 된 사랑한다는 말이
침대 모서리를 돌아와 누워 바라보는 간 유리에
방울방울 투영되는 햇살의 찬란한 절정으로 와닿길 기다리면서
싱싱한 첫 것이 아니어도 쭉쭉 곧게 뻗어 오르던 가지들
후두두 뜨거운 열기가 성욕으로 휘몰아치던 지난여름 숲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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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에는 / 이향아
마른 풀 섭에 귀를 대고
소식을 듣고 싶다
빈 들판 질러서
마중을 가고 싶다
해는 쉬엄쉬엄
은빛 비늘을 털고
강물 소리는 아직 칼끝러머 시리다
맘 붙일 곳은 없고
이별만 잦아
이마에 입춘대길
써 붙이고서
노쇠 징 두드리며
떠돌고 싶다
봄이여, 아직 어려 걷지 못하나
백리 밖에 휘장 치고
엿보고 있나
양지바른 미나라 꽝
낮은 하늘에
가오리연 띄워서
기다리고 싶다
아지랑이처럼 나도 떠서
흐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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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봄 / 오애숙
눈부신 봄의 햇살
찬란히 가슴속에
스미는 이 행복함
이월의 향기 아닌데
새봄의 향 피누나
오늘 밤 설한풍이
휘몰아친다 해도
이 아침 하늬바람
새봄의 향기로움
이 아침 불어오니
눈부신 금 싸리기가
휘날리는 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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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시 / 이지영
전철역 공중전화 부스에서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보내라는
음성을 바람에 날리고
안산행 열차를 탄다
나를 태운 열차는
꿈속에서
당신이 사는 마을로 달리고
마음은
꽃 수풀을 지나 호수에서 흔들린다
하루 해는 너무 짧고
겨울 저녁은 빨리 어두워지는데
이 저녁을 헤매는 맨발에
감싸주는 당신이 있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
순수의 꽃잎 열고 이 세상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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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하루 / 정영자
햇볕 스미는 대지
나무 그늘 아래 더욱 포근하고
바램 없는
지금이
참으로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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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그리움 / 오보영
그 매서운 추위에도
마구 퍼부어 내리던 폭설에도
내가 이처럼
잘 참고 견디어낼 수 있는 건 오직
님이 있어서다
늘 품 안에서
가슴 훈훈하게 데워주고
가득 머릿속 메워
맘 든든하게 매어주던 님
사랑하는 내 님을
머지않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다림이 있어서다
아련히 그려만 보던 님을
한껏 가까이 옆에서 지켜보며 내내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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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설 한파 / 오보영
어쩔 수 없이 밀려 떠나가야만 하는
네 처절한 절규라는 걸
이해를 하면서도
괜히 네가 딱하다
그리도 오랫동안 불편함을 주더니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못된 성정을 버리지 못하고
피해를 주려 하다니
이제는 네가 불쌍하기까지 하다
모두들 기뻐하는 설도 다가오는데
적어도 한 번은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따뜻한 온기로
그간 응어리진 맘들을 좀 풀어줄 만도 하다마는..
하기야
‘제 버릇 개줄까’라는 속담이 있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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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기도 / 오애숙
수정 빛 맑은 햇살로 해이해진 생각 일랑
허공에 휘~익 날리고 새로 휑 군 맘 되어
프리지어 향기로운 황금빛으로 담금질해
가장 짧은 2월에 정신 곧 춰서지 않는다면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가 후회할 수 있사오니
1월 첫 단추 잘못 끼워 낙망하지 않고 일어나
새론 결심 가지고서 잘못 끼운 단추 다시 풀어
재 자리 끼워 남은 단추 11개 바라보게 하소서
다시 한겨울의 한파 몰려 온다고 해도 푸른 동산
희망의 나래 펼치어서 앞만 보고 달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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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입춘 / 최홍윤
봄은 오는데
살가워야 할 2월이 매섭기만 하다
배우고 익히다
이별 아닌 이별로 서러워진 마음
그 마음들 때문에
이틀이나 짧아진 2월인가 보다
꿈 찾아
꿈을 키우려
이리저리 떠나는 나그네 인생길도
이 2월에 시작되고
얼어붙은
천지 간에서
복록이라도 불러들이려는 내 심사
나도 이미 입춘대길을 부르짖었다.
버들강아지
방그레 웃는 산골짝 어디선가
졸졸 흐르며 뒷물 훔치는 소리
반세기 전에
마지막 학교 문턱을 나서던
이 땅의 누이들의
눈물 훔치는 소리가,
더는 오갈 데가 없던
누이들의 서러움이,
아직도 내 가슴을 적신다.
=================
+ 2월의 첫 날 / 이계원
그 날 보았습니다
당신이 벌써
저만큼 옛집
울타리에 와 있는 것을
겨우내 몸살을 얼마나 앓았는지
온몸이 상처투성이 인 채로
아프다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오로지 나 만을 향해
눈빛이 오고 있습니다
집 앞 소나무
이파리 사이사이로
바람 끌어 와서는
살랑거리는 당신
살그머니
고개 내밀고
내게로 오고 있는 것을
그 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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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햇살 / 김미경
영산홍 핀 베란다를 지나
아라우카리 아가 무성한 거실 한켠을 낮 두시가 넘도록 누워 있는 햇살,
오래도록 그 햇살을 가슴에 안고 싶다
푸른 물에 발을 담근 햇살의 한 무더기 미소를 내 마음껏 마시고
긴 동면에서 깨어나 그 햇살을 받아 푸르른 초록을 내 나신에 수놓고 싶다
시클라멘처럼 수많은 촉수의 꽃을 피우듯......
햇살이 주는 것만큼만 피울 수 있는
나무이고
열매이고
꽃이고 싶다
아니
2월의 햇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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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은 가고 / 민경대
2월은 가고 봄은 골목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늘 골목은 어두운 등불 아래서 웅크리고
밤의 그늘은 습지에서 노트를 펼치며 기록을 하나
점하나 가 꽃모 중이 되어 길거리에 봄날 핀다면
노래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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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9일, 윤년 / 오정방
오랜만이다
꼭 4년 만이구나
오늘이 지나고 나면
다시 너를 만나기 위해
4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나의 오래 남지 않은 생애에
너와 몇 번을 더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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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초가집 / 김기덕
봄 빛이 그림 그리는 광야에
짚으로 이영을 인 초가집 한 채
문은 바람이 다 뜯어 가버리고
비 오는 날 천정에서 슬픔이 샌다
일 년 사계절 펄럭이는 바람의 집
이별의 빗물이 아직 젖어 있는 땅
누군가 마른 들풀을 깔고 한숨 쉬었던
벼 짚 베개 이야기 끝나지 않았다
부엌은 있어도 솥은 없고
구들에는 들새들이 울었던 흔적과
사이다 기억을 한방 널어놓은
불쌍한 맨발 자욱이 눈동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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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과 3월 사이 / 김하인
슬픔에서 졸업하면 금방 기쁨으로 입학하는 건 아닙니다.
졸업과 입학 사이엔 늘 간격이 있기 마련이듯 이별에서 만남으로 가는 과정에도 홀로 견뎌야 할 틈이 있습니다.
아픔 정리하기도 하고 슬픔을 묶어 세월의 다락방에 올려두기도 해야 하죠.
사람과 사람 사이만큼 한 사람의 마음과 가슴 사이에도 메울 수 없는 깊은 골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타는 래프팅에 익숙치 못하면 자신의 가슴골에 빠져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이별하는 사람들, 다시 새로운 사람 만날 사람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눈물에서 빠져나와 바람처럼 가볍게 날아오르십시오. 지나가면 멀어집니다. 아득히 잊혀지면 신개척지의 새로운 가슴 닿는 일도 무척이나 설레고 멋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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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에 내리는 눈 / 고은영
그리움이 못내 사무친 그린나래
그대는 먼발치 바람으로 머물러
구름이 되더니
쓸쓸한 눈발이 되어 흩날리느냐
2월 단장이 서글픔만 할까 보냐
가람의 그 투명한 얼음 꽃을 그려 넣던 설경이
승천하지 못한 그리움으로 굽 이치 누나
한의 의미로 굽 이치 누나
굽이치다 기억에 묻힐 아픔이 누나
더는 묻지 마라 가막새 우는 자리
2월의 행적엔 천년의 한이 뭉쳐 흐르나니
목메게 보듬다 갈피 없는 자국눈으로 흘러 흘러
훗날을 도모하고 꽃잠을 깨우나니
봄을 일으키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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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이 짧은 이유는 / 민경대
2월은 가고
지금 2월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황토밭
자갈밭으로 밀려
오늘도 몇 잎 남은 낙엽처럼
무늬만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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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창가에 앉아서 /오애숙
동지섣달 지루했던 기나긴 밤 지나
소한 대한을 보내고 긴 잠에서 깨어나면
파르란히 날개 달아 들판 날고파라
내 어깨에 금빛 날개 달아 날아가다
흰 구름 만나면 그곳에 걸 터 앉아 바람 따라
구름이 가는 산이든 들이든 가고파라
이역만리 그 어린 시절로 날개 쳐 날아
논에서 썰매 타고 연 날리며 즐기다 설 되면
때때옷에 복주머니 달고 응석 부리고 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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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용서를 위한 기도 / 이해인
그 누구를 그 무엇을
용서하고 용서받기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 위의 당신을 바라봅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이유 없는 모욕과 멸시를 받고도
피 흘리는 십자가의 침묵으로
모든 이를 용서하신 주님
용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용서는 구원이라고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조용히 외치시는 주님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기엔
죄가 많은 자신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진정 용서하는 일은 왜 이리 힘든지요
제가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미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아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고
깨끗이 용서받았다고 믿었던 일들이
어느새 어둠의 뿌리로 칭칭 감겨와
저를 괴롭힌 때도 있습니다
조금씩 이어지던 화해의 다리가
제 옹졸한 편견과 냉랭한 비겁함으로
끊어진 적도 많습니다
서로 용서가 안 되고 화해가 안 되면
혈관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늘 망설이고 미루는 저의 어리석음을
오늘도 꾸짖어 주십시오
언제나 용서에 더디어
살아서도 죽음을 체험하는 어리석음을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
제가 다른 이를 용서할 땐 온유한 마음을
다른 이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땐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하루 해 지기 전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먼저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겸손한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잔잔한 마음에 거센 풍랑이 일고
때로는 감당 못할 부끄러움에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될지라도
끝까지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랑을 넓혀가는 삶의 길로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주님
너무 엄청나서 차라리 피하고 싶던
당신의 그 사랑을 조금씩 닮고자
저도 이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렵니다
피 흘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이를 끌어안은 당신과 함께
끝까지 용서함으로써만 가능한
희망의 길을 끝까지 가렵니다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묵묵히
용서와 화해의 삶으로 저를 재촉하시며
가시에 찔리시는 주님
용서하고 용서받은 평화를
이웃과 나누라고 오늘도 저를 재촉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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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 함영숙
문지방
넘어가는
일월의 끝을
아직 놓지 못하고
1월의 방안을 휘 둘러본다
시의 시작이 있었고
사랑의 교제가 있었고
친구의 배신과 죽음이 있었고
산 사람들의 웃음꽃이 있었다
1월의 추억 장소를 거닐며
눈과 물의 사랑
물과 불의 사랑
하늘과 바다의 사랑
겨울과 봄의 사랑
이 사랑 저 사랑을 포옹해 본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의 끝을 잡고
2월이 빨리 오기를 소망하며
넘길 바통을 마음에 품고
사색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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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2월 / 홍경임
그해 2월은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 함께 다가왔다
입춘이 머지않은 어느 날
그와 난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내 조그마한 믿음은 그의 영혼을
천국 시민으로 인도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지만
감정의 충복인 난
너무 가벼운 인내의 소유자이기에
감당하기가 무척이나 힘겨웠다
해를 바꿔가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힘을 기울였지만 역 부족이었다
신은 내게
그의 영혼을 하늘나라 시민으로
전도케 용납지 않으셨다
이천 년 하고도 사 년인 그해 2월
가슴을 도려내는 통증과
눈도 내리지 않고 찬 바람만 무성한
황량하고 추운 겨울만 계속되는 나날을
난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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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하늘의 2월 / 박종영
어둠을 벗어나는 별들의 웃음에서도
나는 늘 그리움을
파먹으며 살아 가슴 따뜻하다
그렇게 무수한 세월을 읽어주는
밤하늘의 별이 더 밝게 보이는 것은
내 우둔한 성장이 게으름을
벗어난 탓이리라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강의 깊이를 재며 흐르는 물살의 여행도
같은 흐름의 내 세월의 강이 되기도 하고,
얼음 벽에서도 피어나는 꽃 무리,
붉은 꽃대의 순결은
옆집 옥이의 해맑은 그리움으로 돌아와,
싱싱하게 일어서는 매화꽃 한 송이를 보라
만지면 터질 듯 소담한 봉오리
엉큼스레 가슴 밑에 차오르고,
어느 시간은 촉촉이 젖은 가슴 부끄러워
하늘 가리고선 자리,
강변 마른 갈대가 기운 차리고
우우 소리 내며 일어서는,
2월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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