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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7월의 시 모음

청포도..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아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젹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7월 첫날의 기도..정연복

시작이 반이라더니

눈 깜빡할 새

올해도 벌써

내리막에 들어섭니다

후반전의 단추를

잘 끼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사랑의 단추를

많이 끼게 하소서

빛 고운 단풍을 향하여

서서히 다가서는 나뭇잎같이

나의 生도 조금조금

안으로 익어가게 하소서

7월의 편지..박두진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

7월의 태양에서는

장미꽃 냄새가 난다

그 태양을 쟁반만큼씩

목에다 따다가 걸고 싶다

그 수레에 초원을 달리며

심장을 싱싱히 그슬리고 싶다

그리고 바람

바다가 밀며 오는

소금 냄새의 깃발

콩밭 냄새의 깃발

아스팔트 냄새의 그 잉크빛 냄새의

바람에 펄럭이는 절규

7월의 바다 저 펄럭이는 파면

새파랗고 싱그러운

아침의 해안선의 조국의 포옹

7월의 바다에서는

내일의 소년들의 축제소리가 온다

내일의 소녀들의

꽃비둘기 날리는 소리가 온다

 

 

7월..정연복

시작이 반이라는 말 딱 맞는다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월

눈 깜짝할 새

두툼하던 달력이 얄팍해졌다

하지만 덧없는 세월이라

슬퍼하지 말자

잎새들 더욱 푸르고

꽃들 지천에 널린

아름다운 세상

두 눈 활짝 뜨고

힘차게 걸어가야 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몸 드러내는 정직한 시간

마음의 빗장 스르르 풀리고

사랑하기에도 참 좋은

7월이 지금 우리 앞에 있으니

 

7월의 길목에서..임영준

햇볕은 열망을 품고

소나기는 물꼬를 튼다

막힌 여울이 무겁고

기울어진 추상이 늘어져도

일그러진 일상을 두드리고

허술한 노정을 다듬어

 

알찬 열매가 되리니

넘쳐흐르는 물결이 되리니

7월의 바다..황금찬

아침 바다엔

밤새 물새가 그려 놓고 간

발자국이 바다 이슬에 젖어 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밟으며

싸늘한 소라껍질을 주워

손바닥 위에 놓아 본다

소라의 천 년

바다의 꿈이

호수처럼 고독하다

돛을 달고 두세 척

만선의 꿈이 떠 있을 바다는

뱃머리를 열고 있다

물을 떠난 배는

문득 나비가 되어

바다 위를 날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

나비를 쫓아간다

어느새 나는 물새가 되어 있었다

 

7월..김정남

발자국 소리도 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도착한 너

오늘은 쉴 법도 하고

내일은 산에 오를 법도 한데

너는 늘 바쁜 모습으로

희망만을 노래하며 걸어왔구나

봄의 기운

푸르름에 행복해서 살짝 웃다가

이젠

여름의 기슭 더위 뒤에 숨어서

청포도 익어갈 때를

기다리고 서 있으니

아무 색깔 아무 욕심없이

질주하는 너는

정녕 7월이라..

 

7월에게..고은영

계절의 속살거리는 신비로움

그것들은 거리에서 들판에서

혹은 바다에서 시골에서 도심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절정을 향혀 치닫는

계절의 소명 앞에

그 미세한 숨결 앞에

눈물로 떨리는 영혼

바람,공기,그리고 사랑,사랑

무형의 얼굴로 현존하는 그것들은

때때로 묵시적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것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안녕! 잘 있었니!

 

 

7월..오세영

바다는 巫女[무녀]..휘말리는 치마폭

바다는 狂女[광녀]..산발한 머리칼

바다는 處女[처녀]..푸르른 이마

바다는 戱女[희녀]..꿈꾸는 눈

7월이 오면 바다로 가고 싶어라

바다에 가서

미친 여인의 설레는 가슴에

안기고 싶어라

바다는 짐승

눈에 비친 푸른 그림자

 

 

7월의 기도..윤보영

7월에는

행복하게 해 주소서

그저 남들처럼 웃을 때 웃을 수 있고

고마울 때 고마운 마음 느낄 수 있게

내 편 되는 7월이 되게 해 주소서

3월에 핀 강한 꽃은 지고 없고

5월의 진한 사랑과

6월의 용기 있는 인내는

부족하더라도

7월에는

내 7월에는 남들처럼

어울림이 있게 해 주소서

남들보다 먼저 나오는 말보다는

가슴에서 느끼는 사랑으로

어울림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소서

내가 행복한 만큼

행복을 나누어 보내는

통 큰 7월이 되게 해 주소서

 

 

7월..목필균

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

돌아선 반환점에

무리 지어 핀 개망초

한 해의 궤도를 순환하는

레일에 깔린 절반의 날들

시간의 음소까지 조각난 눈물

장대비로 내린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폭염 속으로 무성하게

피어난 잎새도 기울면

중년의 머리카락처럼

단풍 들겠지

무성한 잎새로도

견딜 수 없는 햇살

굵게 접힌 마음 한 자락

폭우 속으로 쓸려간다

 

7월..김안로

다시 올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릴 참이다

발을 헛디딘

지난 세월은 잊어라

너의 노력이 정당하다면

이동의 대가로 나를 만나리라

오롯이 간장감으로

저장해가는 빛의 맛, 열매

 

수채화..손월향

햇살 한 웅큼

도화지에 쏟아 놓고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마음을 색칠하면

도화지에 퍼져 가는

지난 여름

7월의 풀숲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숨었던 얘기들도

풀숲에서 일어나

7월의 초록빛 나무로

쑥쑥 자란다

 

7월은 치자꽂 향기속에..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랗게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땡볕..손광세

7월이 오면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의 변두리쯤

허름한 완행버스 대합실을

찾아가고 싶다

죽이 다 된 캐러멜이랑

다리 모자라는 오징어랑

구레나룻 가게 주인의

남도 사투리를 만날 수 있겠지

함지에 담긴 옥수수 몇 자루랑

자불자불 조는 할머니

눈부신 낮꿈을 만날 수 있겠지

포플린 교복 다름질 해 입고

고향 가는 차 시간을 묻는

흑백사진 속의 여학생

잔잔한 파도를 만날 수 있고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려승의 밀집모자에

살짝 앉아 쉬는

밀잠자리도 만날 수 있겠지

웃옷을 벗어 던진 채

체인을 죄고 기름칠을 하는

자전거방 점원의

건강한 웃음이랑

오토바이 세워 놓고

백밀러 들여다 보며 여드름 짜는

교통 경찰관의

초록빛 선그라스를 만날지도 몰라

7월이 오면

시멘트 뚫고 나온 왕바랭이랑

쏟아지는 땡볕아래

서 있고 싶다

 

 

7월의 오면..오정방

훨훨 날아가는 갈매기

옛 친구같이 찾아 올

7월이 오면

이육사를 만나는 것으로

첫날을 열어 보리

활활 타오른 태양이

소낙비처럼 쏟아질

7월이 오면

청포도를 맛보는 것으로

첫날을 시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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