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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장맛비에 관한 시 모음

 

장맛비에 관한 시모음 - 9 

 

이젠 그만 /강보철

 

질척거리는 장맛비

내딛는 걸음마다 첨벙대며

새것도 헌것도 그게 그거라고

 

쏟아붓는 햇살에

헉헉거리던 넓은 창으로

따따닥 타닥타닥 주르르

 

40년도 넘은 검정 다리

버티고 버티는 다릿간

누군 걸리고 누군 지나치고

쫓기고 밀리는 시간 속

턱 밑까지 차오르는 물소리

 

부대끼고 다투었던 일들

아물지도 버티지도 못해

웩웩 게워 내는 흙탕물

티끌까지 박박 긁어낸

흉진 일상 눈물방울 적신다

 

 

장맛비 /강우식

 

그토록 바라던 남자에게

시집갔으면 잘 살기나 하지

누님은 비처럼 살다 갔다.

언젠가는 남세스럽다고

이웃집 몰래 발소리도 없이

봄비처럼 왔다 간 줄 모르게 오더니

그 사이 별별 일 다 겪으셨나

미친년처럼 산발한 머리채를 휘두르며

챙긴 보따리도 없이 달랑

눈물 콧물 물이란 물 다 짜면서

참 소란스럽게 시집간 누님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연스럽게 간다는 기별도 없이

주구장창 집에 내처 앉아서는

온 가족이 다 따라 젖도록 만들었다.

그 누님이 죽자 장마도 떠나고

그동안 겪은 사연일랑 다 묻으며

무심히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상처만 남기고 간 장맛비       /김정숙

 

하늘이 배를 열고 복통을 한다

흑마들이 우렁찬 울음소리를

토하듯 쏟아져 내려온다

 

대지 위를 꼽는 말발굽 소리에

잠자든 세포들이 놀라 일어난다

 

검은 말들의 발 길질에

사랑의 열매는 익기도 전에

낙과 되어 바닥에 구르고

버티든 나무는 뿌리 뽑혀

거리에 힘 없이 누워 있다

 

다 쏟아낸 텅 빈 하늘 아래

검붉은 상처 입은 잔인한 흔적

 

말발굽 소리 멀어지자

 

비를 개어 수채화 그려 보니

무지개가 피어 난다.

 

 

장맛비       /백승운

 

오늘도 당신의 사랑

촘촘히 쏟아내며

아롱아롱 가슴에 달려

 

그립다

보고 싶다

혼자 흘리는 눈물처럼

 

그렇게

며칠을 쏟아놓고

가슴 치는 안타까움

 

그리울 때 달려가고

보고 싶을 때 만나면

애타는 사랑 없겠지만

 

살아가는 인생길

좋은 길로만 갈 수 있게

빌어보는 오늘

 

비는 아랑곳없이 내리고

나는 보고 싶다

긴 그리움의 편지를 쓴다.

 

 

장마비의 역습     /동파 신광덕

 

장마짙어 길어지니

집안엔 곰팡이 냄새로 가득하다

 

마누라 친정 부모 노환으로 병시중 가고

혼자 챙겨 먹던 끼니도 짜증에서 익숙으로 변한다

 

말 한마디 논할 수 없으니, 고독을 체험해 간다.

삶의 방식이야 천차만별

 

낚시 행락의 동네 친구도

어긋난 약속에 하늘향해 욕짖거리 해댄다

 

햇살 잠깐씩 비출라치면 창문 열고

눅눅한 이불이며 옷가지 내어 말려도

 

잠깐의 시간에

장대비 내려 온통 젖어버린 옷가지들이여

 

보일러 돌려도 닫힌 창문에 공기 소통 안 되니

갑갑한 땀방울 숨 막혀온다

 

긴긴 장마에 반늙은이의 건강은 쇠하여 간다.

기우제가 아닌 망우제를 지내야 할까 보다

 

 

장맛비        /장계숙

 

종일 온몸 부수며

제 속 토하는 빗줄기

무작정 지나는 세월 너머

목숨처럼 걸어둔

내 철학에의 묵념

그림자 없는 빗속에서

문득 내 그림자로 만나는

딱딱한 감정의 밀폐

뿔뿔이 흩어져 쓸려가길

 

어지러이 추락하는 내 눈빛에

가슴에 박힌 영혼의 흔적

가볍게 떠서 죽지도 않고

바닥을 기는 낮음에의 공허

시든 나를 녹이며

깨달음의 언어

방생을 꿈꾸네

 

 

장맛비 내리는 날       /이재환

 

하늘에선 시도 때도 없이

장대비를 마구 쏟아붓고

 

나라는 천둥 번개 치듯 한시도

조용할 날 없이 시끄럽고

 

흐르는 강물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강으로 흘러가고

 

인생 시계는 쉬었다 가면 좋겠는데

고장도 없이 잘도 가네

 

 

장맛비의 잔상       /전해정

 

먹장구름이 가려놓은 하늘

얼마나 큰 서러움 있었길래

저리도 굵은 눈물 떨구는가

 

양철지붕 추녀 끝 물줄기 따라

지나간 추억의 잔영

꿈틀거리는 상념들이

옴팡지게 가슴팎으로 모여든다

 

희뿌연 운무를 벗어버린 뒷산

숨바꼭질하는 햇살의

짓궂은 장난에

한 폭의 수묵화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장맛비를 보며      ​ /이영권

 

어머니는 언제나

끊이지 않는

장맛비 속에 서 계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우산도 받칠 수 없는

세월이 슬플 뿐

어릴 적 빗속에서 울어 젖히는

청개구리를 비웃었는데

이제는 그 청개구리처럼

그 청개구리보다 더 청승맞게

소리도 내지 못하는

울음을 울고 있다

내가 그 장맛비를 맞으며

 

 

장맛비 단상     /박인걸

 

장맛비가 지붕을 두드리며
쉼표없이 노래를 부른다.
음악부호를 무시한 선율로 내릴 때
지루함에 젓는 나는 홀로 창가에 서 있다.

이따금 거셋 빗줄기는
베란다 유리창으로 흘러내리고
창밖으로 그려지는 비 오는 풍경은
고독의 물결처럼 마음을 적신다.

거실은 쓸쓸한 음영으로 채워지고
희미한 거실 조명아래
텔레비전 아나운서는 혼자 지껄일 뿐
나는 무거운 침묵에 젖어있다.

한없이 지루한 시간 속에
고독은 점점 더 짙어만 가고
심연에 자리 잡고 있던 우수(憂囚)
고개를 들까 봐 걱정된다.

장맛비는 끝나지 않은 노래처럼
지루함을 모르고 내리지만
나는 무한한 시공간의 무게를 느끼며
존재의 이유에 젖어 든다.

 

 

장맛 비         /송태봉


장맛 비의 울음소리가
세상을 울립니다

고요했던 나의 심장은 박자를 이뤄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태풍이 시작됨을 알리기 위해
세차게 나부끼는 풍향 깃발처럼
북재비가 서서히 강도를 더하며
난타 하기 시작한 용고처럼
점점 그 울림을 더해 갑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종장에
가슴 저밈을 느끼며
어지러움에 정신은 혼미해져 갑니다

 

 

장맛비가 내린다     /강개준

 

비가 내린다. 세차게
들려온다. 빗소리가
모형도 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우거진 나뭇잎들이
화살 같은 빗줄기에
푸드덕 톡톡 신음을 토한다

숱 덩이 같은 어둠이 후줄근해진다
등골에 진땀을 흐르게 했던 더위는
어디로 도망을 갔을까

더위에 지쳤던 피로가
죽어가는 숯불처럼 사그라져 간다

가로등이 눈물에 젖어 흐릿하다
흐릿한 불빛 사이로
약했다 강하게
강했다 약하게 들려오는 소리
볼 수 없는 빗소리의 변주곡

때로는 멀게 때로는 가까이
들려오는 빗소리에
시인은 흘러가 버린 추억에 잠긴다
젊은 날의 고왔던 사랑 이야기가
내리는 빗속에 아른거린다. 그리움이다

비는 내린다 계속 세차게
어둠 속에 내리는 비라서
밤 비라고 불러주기엔 너무 강한 비
이런 비를 폭우라고 불러야 맞겠지

비가 내린다장대비가
숱 덩이 같은 어둠 속에서
비가 내린다 장맛비가

 

 

도깨비 장맛비       /정이산

 

여름엔 장맛비가 내리는데
이제 내리기보다는 퍼붓는다.
폭우는 작은 바가지가 아니라
큰 양동이로 붓듯이 내린다.

사막에는 물기가 없기에
식물이 잘 자라지 않지만
촉촉한 습기가 있는 땅에는
풀들이 저절로 잘 자란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밭에서
새싹으로 올라오는 풀들을
부지런한 농부는 제거하지만
장마철엔 잡초를 막지 못한다.

마음에 자란 나쁜 악의 뿌리도
새싹이 어릴 때 찾아서 없애라.
악이 자라면 자신을 파괴한다.

 

 

장맛비       /전세창

 

무더운 여름에는

한줄기 소나기라도 내리면

가마솥 더위가 푸쉬쉬

한순간 사라질 텐데

 

고대하던 비가 내리면

쾌재를 부르며 기뻐하다가

이게 장마로 바뀌면

또 햇볕이 그리워진다

 

몇날며칠 계속 비가 내리면

시원함이 문제가 아니라

홍수가 나는 재앙이 온다

 

적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적당함이 최고라는

세상의 이치가 강수량에도

적용이 되는구나 깨닫지

 

장맛비만 보면 생각나는 것

구약의 하나님의 물의 심판

올 장마도 잘 지나가리라

하늘을 보며 기대해본다

 

 

장맛비       /도깨비 최명운

 

간밤 장맛비 소리에
잠에서 깨어 CCTV를 보니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진다
장마란다
24년 올 장마는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세계는 허리케인 태풍 홍수로
재산을 잃는가 하면
가뭄으로 기근에 목이 타는
아픔을 겪는다고 한다
이 현상이 환경으로부터 오는
재앙이라는데
우린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비가 잦아들고 계곡으로 나갔다
어제만 해도 물소리
조그마했는데 비 온 뒤라서
우렁찬 소리를 낸다

산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안개를 빨아 드리고
내뱉고 격한 사랑을 한다
더 나은 세상 만들려고
주고받으며 진보하는데
인간은 지구의 종말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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