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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고전명구]적적한 마음을 달래며 적적한 마음 시로 달래며 풍토병으로 파리한 몸 침상에 기대노라니 적막한 방 낡은 창엔 빗소리만 추적추적 잠들어 배고픔 잊는 방법은 새로운 기술이고 꿈속의 시 많이 완성하는 일은 오랜 버릇이네 발 너머 제비 오가니 사일(社日) 지났음 알겠고 처마 아래 꽃 피었다 지니 바삐 가는 봄 탄식하네 담가 놓은 새 술이 마침 익었는데 시장 술보다 맛 좋고 잔을 드니 더욱 향기롭네 漳疾淸羸寄一牀 장질청리기일상 壞窻虗寂雨聲長 괴창허적우성장 新工睡得忘飢法 신공수득망기법 舊癖詩多足夢章 구벽시다주몽장 簾鷰去來知社過 염연거래지사과 簷花開落歎春忙 첨화개락탄춘망 經營適値新醅熟 경영적치신배숙 味勝村沽挹更香 미승촌고읍갱향 조관빈(趙觀彬, 1691~1757), 『회헌집(悔軒集)』 권2 「즉흥시를 쓰다[書卽事]」 이 시는 춘사일(春社日).. 더보기
위선을 경계하며 고상한 대나무인 양 마디 닮았고 어여쁜 계집애처럼 꽃도 폈지만 흩날려서는 한 가을도 못 견디니 대나무라 한 것은 분수 넘는 짓 아닌가. 節肖此君高절초차군고 花開兒女艶화개아녀염 飄零不耐秋표령불내추 爲竹能無濫위죽능무람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전집(東國李相國全集)』 제1권 「고율시(古律詩)」 2023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 적반하장(賊反荷杖), 남우충수(濫竽充數) 등이 선정되었다. 견리망의가 눈앞에 이익이 보이거나 이익을 보면 의리를 저버린다는 뜻이고, 적반하장이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말로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되려 나무란다는 뜻이며, 남우충수가 피리를 불 줄 모르는 악사로 숫자를 채운다는 말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 더보기
눈과 편지 눈과 편지 바람이 맑게 불거나 달빛이 밝게 비추면 유윤(劉尹)이 허순(許詢)을 떠올리고는 했다거나 큰 눈이 쏟아진 밤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져 길을 나선 왕휘지(王徽之)가 정작 그의 집 앞에서 배를 돌려 돌아왔다는 건 세월을 일천육백육십 년쯤 거슬러가 보아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나 같다는 이야기. 그러나 더욱이 눈은 문득, 오는 것이다. 봄의 바람과 여름의 비, 가을의 볕마저도 소리와 함께 찾아오건만 눈은 기척도 없이 내린다. 눈이 오면 세상이 가까이서 닫히고 소리마저 가만히 삼켜지는데, 사람은 오히려 먼 데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전해지길 기필하지 않은 마음을 수군거린다. 예순여섯 해 전의 시인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사람에게 ‘즐거운 편지’를 .. 더보기
[고전명구]말하는 사람 수고롭고침묵하는 이 편안하다 말하는 사람 수고롭고 침묵하는 이 편안하다 온갖 묘함이 나오는 근원 침묵만한 것이 없으리로다. 영악한 자 말이 많고 어수룩한 이 침묵한다 衆妙門, 無如默. 巧者語, 拙者默. 중묘문 무여묵 교자어 졸자묵 - 장유(張維, 1587~1638) 『계곡집(谿谷集)』 권2 「묵소명(默所銘)」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장유는 침묵의 집, 묵소당을 짓고 이 명(銘)을 지었다. 그는 묵소명에 이어 묵소잠(默所箴)을 지어 다시 그 뜻을 나타내고자 했다. “조급한 자 말이 많고 고요한 이 침묵하며, 말하는 사람 수고롭고 침묵하는 이 편안하네.” 옛날의 현인들은 이렇듯 말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을 수양의 출발로 삼았다. 공자가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진 이는 그 말을 삼간다고 했던 것”이나 인의 4가지 덕목의 하나로 ‘.. 더보기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 사람은 만나는 일이나 만물을 접할 때에 대부분 내 생각과 같지 않은 데서 곧 불평이 생겨난다. 人遇事接物, 多因不如己意, 輒生不平. 인우사접물 다인불여기의 첩생불평 - 전우(田愚, 1841~1922) 『간재집(艮齋集)』 6권 「답홍주후(答洪疇厚)」 대관절 화라는 감정은 왜 주체 못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사태를 곤란하게 만들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칠정(七情) 중에서 가장 분란을 일으키기에 조심시켜야 할 감정은 바로 ‘노(怒)’이다. 분노라는 뜻의 한자 ‘분(忿)’을 파자(破字)해서 보면 ‘산산조각난 마음’이라 풀이된다.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지경에 도달하고야 만 마음. 그렇기에 어떻게든 표출되어야 할 마음이란 얘기다. 저자 전우는 홍주후라는 사람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분.. 더보기
‘산비리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을 찾아서 ‘산비리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을 찾아서 오래된 길에 사람 자취 사라져 울긋불긋 이끼가 끼었는데, 산이 속세를 떠난 게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났구나! 古徑無人紫蘚斑, 山非離俗俗離山. 고경무인자선반, 산비리속속리산. - 황준량(黃俊良), 『금계집(錦溪集)』 권2 「2일 유신(維新 충주(忠州))에 도착하여 속리산을 유람하는 김중원(金重遠 김홍도(金弘度))에게 부치다[二日 到維新 寄金重遠遊俗離山]」 어느새 바람도 제법 쌀쌀해지고 일교차도 커지면서 반팔을 입은 사람들도 부쩍 줄었다. 조금 더 있으면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기러 산행(山行)에 나설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단풍 명소의 하나로 속리산(俗離山)을 꼽는데, 이 산에 관한 명구로 ‘山非離俗俗離山’이 자주 회자(膾炙)된다. 인터넷을 훑어보니 이 구절이 고운(孤.. 더보기
가을을 기다리며 정신없이 농가의 일 수고롭다가 가을 들어 잠시 잠깐 틈 얻고 보니 단풍 물든 언덕에는 기러기 날고 비 맞은 국화 둘레 귀뚜리 울며 목동은 피리 불며 안개 속 가고 나무꾼은 노래하며 달빛 속 오네 일찍 주워 모으기를 사양 말게나 산 배 산 밤 텅 빈 산에 널렸을 테니 搰搰田家苦골골전가고 秋來得暫閑추래득잠한 雁霜楓葉塢안상풍엽오 蛩雨菊花灣공우국화만 牧笛穿煙去목적천연거 樵歌帶月還초가대월한 莫辭收拾早막사수습조 梨栗滿空山이율만공산 - 김극기(金克己, 1150(추정)~1209), 『동문선(東文選)』 제9권, 「오언율시(五言律詩)」. 참 징그럽게도 덥다. 지금쯤이면 한 풀 기세가 꺾일 만도 한데 아직도 한낮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8월 8일이 입추(立秋)였고, 8월 10일이 말복(末伏)이었으니 그만 더워도 될 듯하지.. 더보기
8촌형님? 5촌 아저씨? 팔촌 형님? 오촌 아저씨? 여러분은 ‘촌수(寸數)’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삼촌’이나 ‘사촌’ 등이 바로 연상되지 않을까. 물론 요즘은 ‘촌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친척과 인척 간에 왕래가 활발하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자주 왕래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친가나 외가를 가면 ‘계촌(計寸 촌수를 따짐)하여 ‘오촌 아저씨’라든지 ‘육촌 형님ㆍ아우’라든지 하는 식으로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 및 상호 간의 호칭을 규정하였던 것이 예사였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는 어떠하였을까. 조선 시대에는 한 가문이 동일 가문과 여러 차례 혼인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친척 관계가 중첩되는 이른바 ‘겸친(兼親)’이 발생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