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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그 어느 작은별 하나 그 어느 작은 별 하나(Another Little Star) 늦가을에서 겨울로 지나는 시간 찬 바람에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빈 가지 끝에 별들이 매달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맑게 씻기운 밤하늘 저 아득한 먼 공간에서 쉼 없이 다가오며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보는 사람 없는 저 작은 별들에도 행성들이 있어 그 별 때문에 살아가고 사랑하고 힘들고 아프고 위로하고 위로 받고 꿈꾸고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친구들이 있을까... - 백원순 님 더보기
고정 관념을 깬다는 것 앞 여울에 물고기 하도 많아서 마음먹고 물결 가르며 날아들려다 사람 보고 별안간에 너무 놀라서 여뀌 핀 언덕으로 되려 날아와 목 뺀 채로 사람 가길 기다리느라 가랑비에 털옷은 자꾸 젖지만 마음 외려 여울 고기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욕심 잊고 서 있다 하네. 前灘富魚蝦전탄부어하 有意劈波入유의벽파입 見人忽驚起견인홀경기 蓼岸還飛集요안환비집 翹頸待人歸교경대인귀 細雨毛衣濕세우모의습 心猶在灘魚심유재탄어 人導忘機立인도망기립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전집(東國李相國全集)』 제2권, 「고율시(古律詩)」. 중 제2수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변하지 않는 굳은 생각이나 무엇인가에 대해 당연하다고 알려진 생각을 고정 관념이라고 하는데, 고정 관념은 종종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고정 관.. 더보기
다음에 봅시다 케이티엑스 타고 서울 가는 길 옆 통로에선 중년의 사내들 몇이 세상사를 논하고 나는 뜨개질을 하며 여행길의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간식이 건너온다 자판기에도 없는 사탕 한 알 낯선 이의 마음 씀을 입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다음에 봅시다 한 마디 툭, 던지고 그들이 사라진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생면부지의 여자에게 던지는 한 마디, 다음에 봅시다 물론 다음에 볼일이 없을 거라는 걸 전제로 던졌을 그 말이 긴 여운을 남기고 기차는 그 말을 지우듯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 조옥엽, 시 ‘다음에 봅시다’ 툭 던지고 사라진 생면부지 사람의 말, 기약이 없지만 긴 여운을 남긴 그 말, 다음에 봅시다. 낯선 이의 마음 씀이 지루하거나 외로운 길에 따스함을 주기도 합니다. 쓸쓸한 듯 아름다운 이 가을의 끝자락도.. 더보기
위기의 틈새 위기의 틈새 전쟁 위기 전염병 위기 기후 위기 인류에게 닥칠 수많은 위기 위기의 틈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 장승진, 시 '위기의 틈새' 인류에게만 닥칠 위기가 아니라 생명 있는 것들의 위기, 지구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위기라고 하는 틈새에도 비집고 나오는 반가운 빛, 희망이라는 꽃입니다. 더보기
담쟁이 붉게 익었다 담쟁이 붉게 익었다 봄날 희망 하나 안고 가파른 담벼락 밤낮 쉼 없이 오르네 삶의 길 고지를 향해 묵묵히 오르고 또 오르네 한여름 뜨거운 열기 세찬 폭우 악착스레 견뎌내고 이 가을 붉게 익은 그 모습에 뜨거워지는 내 심장. - 류인순 님 더보기
철새 철새 다시 찾아온 두루미 가족이 동검도 갯벌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게 구멍을 들락거리는 칠게와 꿈틀거리는 갯지렁이와 함께 한 번씩 빨간댕기머리로 지는 해를 휘감으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의 감각을 온몸으로 저장하며 언 발자국마다 노을빛을 찍고 간다 - 한연순, 시 '철새' 살기 위해 찾아오거나 찾아가는 철새들. 그들의 생존전략을 보면 눈물겹기도 합니다. 순리에 따르면서, 질서를 따르면서 옮겨가거나 옮겨오는 방식. 이해타산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는 사람들의 행동과는 다릅니다. 자연에 맞춰 살아가는 동식물의 섭리에 사람을 함부로 비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보기
천상 여자 천상 여자 텃밭에서 긴 생머리 추스르며 저녁상에 오를 상추 솎고 명절 상경길 피곤한 몸에도 운전대 잡은 나에게 말동무해 주고 박봉의 월급봉투 내밀어도 만 원짜리 숫자 세기보다 뭉친 어깨 주물러 주고 봉투에 풀칠해서 매운 마늘 껍질 까서 한 푼, 두 푼 모은 비상금 친구 만나 기죽지 말라며 건네는 손길 소주 몇 잔 걸치고 길거리 군고구마 봉투 보며 목이 매여왔습니다 미안해서, 바보 같아서 집 앞 골목으로 접어드니 십 년 전 사준 회색 스웨터를 입고 가로등 아래 서 있는 여인 한 올의 실바람도 함께 맞아줍니다 - 최인구 님 더보기
고갯마루 고갯마루 고갯마루에서 보니 빗방울들이 어깨를 맞대고 온 땅을 적시고 있다 함께 떨어지는 빗방울이라야 대지를 적실 수 있지 저 혼자 떨어지는 빗방울은 대지를 적실 수 없다. 나는 혼자 잘 난 척하면서 정작 함께 해야 하는 일에는 조금도 협조를 하지 않았다. 얼굴에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는 빗물을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오이꽃처럼 예쁜 세상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만들 수 있다. - 송성헌 님 더보기